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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타라스 불바(대장 부리바)-최강 전사 카자크 용맹의 세계는 아버지의 권위 묘사로 시작된다. 본문
“얘들아, 어디 뒤로 좀 돌아봐라! 그꼴이 뭐냐! 절말 우습구나! 그 도포같이 생긴 긴 옷들은 도대체 뭐냐? 그런 꼴로 학교에 다니냐?” 이런 말로 늙은 타라스 불바는 키예프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두 아들을 맞이했다. 두 아들은 말에서 막 내렸다. 둘 다 건장한 젊은이로, 신학교에서 갓 나온 학생처럼 주변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똑똑하고 건강해 보이는 그들의 얼굴은 아직 면도날이 한 번도 스친 적 없는 솜털로 덮여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이런 마중에 당혹스러워하며 시선을 떨군 채 꼼짝 못 하고 서 있었다.( 조주관 역, 민음사, 2009)
1.소설로서는 보기 드물게 첫 문장이 입말(口語)로 시작한다. 구전 노래가 서사시로 바뀌고, 서사시가 소설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과도기적 형식을 취했다. 관찰자 시점에서 아버지와 두아들의 상봉 장면을 그림 그리듯 묘사했다. 번역의 문제인지는 몰라도 대화문 안에 느낌표와 물음표가 두 번씩이나 들어간 것은 왠지 어색하다. 소설 전체적으로 대화체 문장이 많다. 희곡형식의 문장을 쓸 때 장면 묘사로 활용해 봄직도 하다.
2.니콜라이 고골의 ‘타라스 불바(Тарас Бульба, 1842)’는 카자크(Казаки) 영웅들의 용맹과 기개, 호전성을 쓴 영웅 서사시다.
타라스(Тарас)는 이름이고, 불바(Бульба)는 성이다. 작품집 ‘미르고르트(1835)’ 에 첫 수록(총 9장에 60쪽) 됐다가 1842년에 대폭 수정(12장 102쪽)해 나왔다.
소설은 희극과 비극을 뒤섞은 독창적인 이야기 전개와 작가 고골 특유의 치밀한 문장과 문체도 압권이다.
특히 전투 장면 묘사는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의 ‘삼국지 연의(소설 삼국지)’나 호메로스(Homeros, BC 800~BC 750)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전투 장면에 견줄 만 하다는 평가다. 사료와 전설, 민담을 폭넓게 수집해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이 소설은 제정 러시아(1721~1917)의 반 폴란드 선전용(러시아정교와 슬라브주의)으로 쓰여졌다는, 혹은 활용됐다는 주장도 있다. 영어명은 ‘Taras Bulba’다.
3.소설은 봉건적 민족 영웅 타라스 불바를 통해 카자크인의 용기와 집념을 강조했다. 카자크(영어 Cossack)는 대표적인 전사집단을 부르는 말이다. 자유인을 뜻하는 튀르키예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자포로제 카자크는 ‘가장 용맹하고 잔인한 카자크’로 알려져 있다. 유라시아 최강의 ‘전투족’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종교가 다른 폴란드의 핍박은 버텨냈으나 러시아의 침략에 봉기했다가 결국 복속(服屬)됐다. 이후 사실상의 러시아 용병으로 전위대 역할을 했다.
프랑스의 정복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카자크(코사크)족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경기병들 중 최고”라며 “만약 내가 그들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나는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타라스 불바는 카지크의 호전성을 잘 묘사했다. 삶보다 우선인 종교, 배신한 아들 처단, 적국 민간인에 대한 잔인함, 불에 타 죽으면서 카자크 전사의 전진을 외치는 무모한 호전기질 등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카자크 마초들의 세계를 너무 잔인하게 표현했다.
주요 등장 인물은 주인공이자 아버지 타라스 불바와 큰아들 오스타프, 둘째 아들 안드리다. 또 타라스의 아내, 폴란드 사령관의 딸, 타타르 하녀, 카자크 군대 부관 드미트로 톱카치, 유대인이자 중개인으로 나오는 얀켈 등이다.
5.줄거리는 아버지 불바가 키예프에서 신학교를 마친 두 아들이 돌아오자 카자크 교육에 나서면서 시작된다. 실전 같은 전투 훈련을 시킨다. 그러다가 폴란드의 한 지방에서 유대인들이 정교도의 교회를 점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출정한다. 불바의 두 아들 오스타프와 안드리도 출전해 전투에서 승리의 기쁨을 맛본다.
그런데 차남 안드리는 도시를 공격하던 중 키예프 학생 시절 흠모했던 폴란드 사령관 딸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아버지와 카자크 집단을 배신한다.
이에 불바는 격분하고, 전투 중에 마주친 아들을 유인해 직접 처단한다. 폴란드군은 안드리의 유인을 알자 지원 부대을 급파해 카자크를 패전의 위기로 내몬다. 불바의 큰 아들 오스타프마저 체포돼 처형당한다. 불바는 장렬하게 죽은 아들을 칭찬하지만 결국 폴란드군에게 잡혀 최후를 맞는다.
6. 타라스 불바를 호평하는 후대 문호들이 많았다. 그 중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는 “타라스 불바는 미증유(未曾有)의 위대한 책 열 권 중 하나”로 꼽았다.
타라스 불바는 1909년 무성영화(감독 알렉산드르 드란코프)로 나온 이후 수없이 영화화됐다. 그 중 미국 영화 리 톰슨 감독의 ‘타라스 불바,1962년가)’ 가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한국 상영 때 제목을 ‘대장 부리바’로 번역해 한국에서는 ‘타라스’가 대장이란 뜻으로 오해되고 있다. 2009년에는 동명의 영화가 러시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합작으로 나왔다.
7.한국에서는 처음으로 1955년 함북 길주 출신 남욱(南郁,1925~1970) 기자(한국일보 부국장 등 역임)가 번역했다. 유일하게 남은 단행본 표지가 훼손돼 책명을 모른다. 문학계는 남욱 기자의 러시아어 실력이 출중해 원작 그대로 ‘따라스 부-리바’였을 것으로 문학계는 추정한다. 민음사에서 2009년 단행본으로 나왔다.
#.니콜라이 고골(1809~1852)=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작가. 러시아 근대문학을 연 선구자. 원래 이름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야놉스키(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Яновский)다. 우크라이나어로는 뮈콜라 바실료비치 호홀야노우스키(Микола Васильович Гоголь-Яновський, 영어로는 Nikolai Vasilievich Gogol-Yanovsky 이다.
1.러시아 제국 우크라이나 폴타바(Poltav) 소로친치(orochyntsi)의 키사크(코사크) 타운에서 시골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곳은 현재 우크라이나 폴타바주 미르호로드구 벨리키소로친치이다.
아버지는 바실 파나소비치 호홀(고골)야노우스키, 어머니는 마리야 이바니우나 코샤로우스카이다. 아버지는 극장을 운영한 아마추어 극작가이기도 했다.
1820년 ‘니진(Nezhin) 고등예술학교(현 니진 고골 주립 대학교)’을 다녔고, 이 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1828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갔다.
2.1834년에는 무자격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중세 역사학(키사크) 등을 강의했다. 1836년 4월19일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희곡 ‘검찰관’이 초연됐다.그리고 파리여행 중이던 1842년 대표작 ‘죽은 혼’ 1부를 발표했다.
3.고골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선과 악’, ‘종교와 윤리’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렸다. 이는 심리적 불안정의 직접 이유였고, 끝내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결국 1850년 ‘죽은 혼’ 2부를 완성했다고 친구들에게 통보해 놓고, 수정 보완만 한 채 발표하지 않다가 2년 후에 대부분을 태워버렸다. 우울증이 정신질환으로 악화한 것이다.
4.1852년 2월11일 주위의 만류에도 금식에 들어간 고골은 서서히 죽어갔다. 그리고 식음을 전폐한 9일째에 영면했다. 장례는 모스크바 대학의 세인트 타티아나 교회에서 진행됐고, 인근 다닐로프(Danilov) 수도원에 묻혔다.
하지만 소련 시대인 1931년 수도원이 폐쇄되면서 노보데비치(Novodevichy) 수녀원에 있는 노보데비치 묘지 (Cemetery)로 이장됐다.
5.고골의 리얼리즘(사실주의) 정신은 훗날 러시아 예술은 물론 유럽 작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주요작품은 ‘초상화(1835)’, ‘코(1836)’, ‘마차(1836)’, ‘검찰관(1836)’, ‘죽은 영혼(1부 1842, 2부 일부 1855)’, 가 있다. 또 ‘외투’, ‘결혼’, ‘도박사’ 등은 작품집에 묶어 출간(1842)됐다.
6.러시아 근현대 문학의 아버지로 떠받들어지는 고골의 기념물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각국에 많다.
첫 기념물은 조각가 니콜라이 안드레예프(Nikolay Andreyev's, 1873~1932)가 앉은 형태 동상으로 만든 작품으로 모스크바 중심가 프레치스텐카 대로에 있다. 1952년 조각가 톰스키가 새로 만든 입상은 아르바트 광장에 있다. 이탈리아 로마 중심부(빌라 보르게세 정원), 스위스 브베 등에도 기념 조각상이 있다.
소련과 러시아에서는 여러 개의 기념 주화도 발행됐다. 2009년에는 출신국인 우크라이나 국립 은행이 고골 기념 동전을 만들었다.
7.고골의 작품을 토대로 영화만 135편 이상이 제작됐다. 가장 최근의 작품은 ‘The Girl in the White Coat(2011)]이다.
일본 요절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1892~1927)가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1809~1849)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내세웠다.(콘텐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