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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명작과 저자 (217)
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지난 220여 년(1800~2022)을 관통하는 소설은 무엇일까. 꼭 찍어 무엇이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그 중 하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іе и наказаніе,1866)’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와 20세기를 관통해 21세기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수많은 독자에게 ‘인간 본성과 윤리’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죄와 벌의 영역본 제목은 ‘Crime and Punishment’이다. 현대 러시아어로는 ‘Prestupleniye i nakazaniye’이다. 죄와 벌은 여느 소설과 달리 숨은 화자(話者)가 감시자로 시작한다. “찌는 듯이 무더운 7월 초의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서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웬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
“뎨 가ᄂᆞᆫ 뎌 각시 본 듯도 ᄒᆞᆫ뎌이고/天텬上샹 白ᄇᆡᆨ玉옥京경을 엇디ᄒᆞ야 離니別별ᄒᆞ고/ᄒᆡ 다 뎌 져믄 날의 눌을 보러 가시ᄂᆞᆫ고.(저기 가는 저 각시 본 듯도 하구나/천상 백옥경을 어찌하여 이별하고/해가 다 저문 날에 누굴 보러 가시는고?) 어와 네여이고 내 ᄉᆞ셜 드러보오/내 얼굴 이 거동이 님 괴얌즉 ᄒᆞᆫ가마ᄂᆞᆫ/엇딘디 날 보시고 네로다 녀기실ᄉᆡ/나도 님을 미더 군ᄠᅳ디 전혀 업서/이ᄅᆡ야 교ᄐᆡ야 어ᄌᆞ러이 ᄒᆞ돗ᄯᅥᆫ디/반기시ᄂᆞᆫ ᄂᆞᆺ비치 녜와 엇디 다ᄅᆞ신고./누어 ᄉᆡᆼ각ᄒᆞ고 니러 안자 혜여ᄒᆞ니/내 몸의 지은 죄 뫼ᄀᆞ티 ᄡᅡ혀시니/하ᄂᆞᆯ히라 원망ᄒᆞ며 사ᄅᆞᆷ이라 허믈ᄒᆞ랴/셜워 플텨 혜니 造조物믈의 타시로다(아아, 너로구나 내 이야기 들어 보오/내 몸과 이 거동..
“나는 그 남자의 사진 석 장을 본 적이 있다. 한 장은 그 남자의 어린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열 살 전후로 추정되는 모습의 사진인데, 어린 꼬마가 여러 명의 여자에게 둘러싸여(그들은 그 꼬마의 누나들, 여동생들, 친척들로 보인다) 정원에 있는 연못가에 거칠게 짠 하카마를 입고 서서, 고개를 30도 정도 왼쪽으로 기울이고 보기 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보기 흉하게? 하지만 약한 둔한 사람들(말하자면 아름다움과 추함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재밌다고도, 아니, 딱히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할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저 “귀여운 아니네요.”하고 적당히 말할지 몰라도, 그말이….(오유리 역, 문예출판사,2022) 1.독자들이 혼돈을 일으킬 수 있도록 소설의 시작을 서문으로 쓰고, ‘나’라는 화자가 푸념하듯이..
“시는 무엇이고, 갈래는 몇 가지이며, 각 갈래에는 어떤 특징과 효과가 있는가? 좋은 시가 되려면 플롯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시의 구성 요소는 몇 가지이고, 성격은 각각 어떠한가? 여기서는 이런 것을 주로 다루겠지만 그 밖에 이 주제와 관련있는 내용도 언급할 예정이다. 먼저 이 주제와 관련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부터 말하는 것이 순서상 자연스러울 것이다. 서사시와 비극, 희극과….”(박문재 역, 현대지성, 2021) 1.예술론의 시초로 대단한 앎의 의지와 예지력을 지닌 첫문단이다. 어려운 예술론을 청중 대상으로 강의하는 형식이어서 아주 쉽게 읽힌다. ‘시(희곡 등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설명문 형태로 너무나 쉽게 제시한 것이다. 상징이나 은유, 풍자가 없는 강의 맞춤형..
“기차는 성이라도 난 듯 불규칙하게 덜컹거리며 내달렸다. 연이어 나오는 작은 역에 멈춰 서서 잠시 초조하게 승객들을 기다렸다가 다시 황량한 대초원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기차가 앞으로 내달리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대초원은 황갈색이 감도는 거대한 분홍색 담요처럼 이따금 일렁거렸다. 기차가 빨리 달릴수록 일렁거림은 더 높게 솟아올랐다.”(홍성영 역,오픈하우스,2015) 1.달리는 열차에 타 있는 듯한 첫 문단이다. 등장 인물없이 고정된 카메라가 찍는 듯한 묘사다. 화자(話者)의 개입이 없는 회화적(繪畵的) 사실주의 서술기법을 적용했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 적는 듯한 도입부로 글쓰기를 배우는 초기 단계에 적용하면 좋은 문체라고 할 수 있다. 2.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
“그렇다, 나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담당 간호사는 나를 지켜보고 있으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일도 거의 없다. 문에 작은 구멍이 달려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호사의 눈은 갈색이어서, 파란 눈을 가진 나를 꿰뚫어 볼 수는 없다.”(최은희 옮김, 동서문화사,2016) 1.1인칭 시점의 독특한 내레이션 구조의 소설을 회고(回顧)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단순하게 읽으면 첫 문단부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구조다. 정신병원에 갖혀 있지만 정신은 올바르고, 지켜보지만 엿보고, ‘갈색 눈’ 대 ‘파란 눈’의 대비 등에서 보듯이 상징과 은유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다층적 구조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논술이나 입사시험 등에서 활용하기 어려운 문체라 할 수 있다. 2.귄터 그라스의 ‘양철북(D..
“어두운 빛깔의 옷을 입고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쓴 덥수룩한 수염의 사나이들이 어느 목조건물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속에는 머리에 수건을 쓴 여인들과 쓰지 않은 여인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건물의 문은 튼튼한 참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뾰족한 무쇠 못이 줄지어 막혀 있어서 육중하게 보였다. 새로운 식민지 개척자들은, 유토피아가 아무리 인간적인 미덕과 행복으로 가득 찬 낙원이라 할지라도….”(김시오 역, 한비미디어,2022) 1.어떤 장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진 찍은 듯이 묘사한 첫 문단이다. 어투가 복잡하지 않고, 과도한 수식어가 없는 깔끔한 문체다. 불안한 미래를 보여줄 듯이 펼쳐지는 도입부로, 흥미있는 전개를 예고하고 있다. 다만 정색한 직역(直譯) 같은 느낌이어서 약간의 의역(意譯)도 필요하다는..
“닐스는 스웨덴 남쪽의 벰멘회그라는 작은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처음 그곳에 정착했을 때 닐스의 부모님은 몹시 가난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작은 텃밭과 낡은 오두막, 돼지 한 마리와 닭 두 마리가 전부였다.”(이은재 편, 지경사,2012) 1.어떤 장소의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한 듯이 묘사한 첫 문단이다. 이렇다 할 상징이나 은유없이 어린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구성했다. 길지 않은 첫 문단에 ‘작은 마을’, ‘가난’, ‘낡은’, ‘전부’ 등은 주인공의 역설적인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글쓰기에 참고할 만 한 첫 문단이다. 2.셀마 라겔뢰프(라게를뢰프)의 ‘닐스의 모험(Nils Holgerssons underbara resa genom Sverige)’은 어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