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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서론-전쟁과 혁명. 마치 사건들이 레닌의 초기 예측을 실현시키려고 서두르기나 한 듯, 전쟁과 지금까지 혁명은 20세기의 흐름을 결정해 왔다. 그리고 전쟁과 혁명은 여전히 우리 세계의 핵심적인 정치적 쟁점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19세기의 이데올로기들과 구분된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주의 주장으로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세계의 주요 실재들과의 접점을 상실한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같은 것들은 19세기의 이데올로기다. 혁명과 전쟁은 자신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 어떠한 교의보다도 오래 살아남았다. 각 민족들은 혁명을 계기로 세계 여러 나라 사이에서 자연법과 자연신의 법이 자신들에게 부여한 독립과 평등의 지위를 유지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한나 아렌트 저, ..
“스물다섯에 죽은 그녀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있을까?/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했다. 그녀는 모차르트와 바흐를 사랑했고, 그리고 비틀스를, 그리고 나를. 언젠가 한번은 그녀가 이런 음악가들과 나를 함께 묶어서 말하기에. 그 순서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방긋 웃으며, ‘알파벳 순서야’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나도 역시 웃어 넘기도 말았다. 하지만 이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녀가 나를 이름으로 명단에 올렸다면-그럴 경우 나는 모차르트 다음이 될 것이고-성(姓)으로 올렸다면 바흐와 비틀스 사이에 끼게 된다. 어느 경우든 간에 내가 첫 번째가 되지 못하는데, 그런 시시한 이유 때문에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나는 항상 내가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왔다. 우리 집안의 내력이라고..
“메리 레녹스가 미셀스웨이트 저택에 들어와 고모부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저렇게 밉살스러운 아이는 처음 본다며 입을 모아 말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메리 레녹스는 얼굴이 야위고 몸도 마른 편에 머리숱도 적고 표정은 심술궂어 보였다. 인도에서 태어나 이런저런 병치레가 잦았던 탓에 머리 색도 노랗고 얼굴색도 노리끼리했다. 메리 레녹스의 아버지는 영국 정부에서 한자리를 맡아 늘 바쁜 데다 건강도 좋지 않았고, 어머니는 굉장한 미인이었는데 파티를 즐기며 화려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딸을 원한 적 이 없었던 어머니는 메리가 태어나자 아야에게 맡겼고, 아야(Ayah)는 멤사히브(Mem Sahib)를 기쁘게 하려면 아이를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끔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만복사에서 저포놀이를 하다. 남원 땅에 양생(梁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아직 결혼도 못한 채 만복사의 동쪽 방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방 밖에는 배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는데 바야흐로 봄이 되어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모양이 옥으로 나무를 깎은 것 같기도 하고, 은 무더기 같기도 하였다. 양생은 달빛이 그윽한 밤이면 늘 배나무 아래를 서성거리곤했다. 낭랑한 목소리로 시도 읊었다. ‘한 그루 배꽃나무 외로움을 함께하누나/가련하여라, 달 밝은 이 밤을 허송하다니./젊은이 홀로 누운 외로운 창가로/어디서 아름다운 임이 퉁소를 불어 보내나./물총새 쌍을 이루지 못해 외로이 날고/원앙도 짝을 잃고 맑은 물에 멱을 감네./누구의 집에 약속있나 바둑두는..
“고작 34층짜리 땅딸막한 잿빛 건물. 정문 입구 상단에 ‘런던중앙배양조절센터’란 글씨, 방패 모양에는 세계국 표어 ‘공공성, 동일성, 안정성’. 1층 거대한 공간이 북쪽을 바라본다. 창문 바깥은 무더운 여름이고, 실내는 푹푹 찌는 건 마찬가진데 분위기는 하나같이 을씨년스럽고, 창문마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매섭게 노려보며 차림새 헐렁한 허수아비를, 살빛이 파리한 전문가를 열심히 찾지만, 보이는 건 유리와 니켈, 번뜩이는 건 음산한 실험도구가 전부다. 음습한 느낌이 사방에 가득하다. 작업자가 걸친 작업복은 하얗고 두 손엔 시체처럼 창백한 고무장갑을 꼈다. 조명은 얼어붙다 죽어, 유령으로 변했다. 누런 현미경 원통이 그나마 조명을 받고, 생명이 깃든 물체는 반질반질한 시험관에 버터처럼 담겨서 황홀하게 쭉쭉 이..
“1917년 9월 말, 러시아를 방문한 외국의 한 사회학 교수가 페트로그라드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그는 기업인들과 지식인들에게서 혁명이 잠잠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에 대한 글을 쓴 바 있었다. 그러나 직접 러시아를 두루 여행하면서 공장지대와 농민공동체를 둘러본 그는, 혁명의 속도가 너무 빨라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는 임금노동자들과 농민들이 ‘모든 토지는 농민에게, 모든 공장은 노동자에게’하고 외치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만약, 그 교수가 전선을 방문했더라면, 군대 전체가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는 혼란스러워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가 목격한 두 광경은 모두 사실이었다. 즉 재산을 가진 계급은 점차 보수화했고, 민중은 더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
“5월 하순의 어느 날 저녁, 한 중년 남자가 샤스턴에서 블레이크 모어 또는 블랙무어라고도 부르는 인근 계곡의 말롯 마을의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남자를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는 비틀거렸고, 걸음걸이는 일직선에서 조금씩 왼쪽으로 기울어지곤 했다. 남자는 어떤 의견에 동의라도 하듯 이따금 고개를 주억거리곤 했지만 사실 무슨 특별한 생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팔에는 텅빈 달걀 광주리가 축 늘어진 채 걸려 있고, 모자에는 보풀이 엉켜 있으며, 벗을 때 엄지손가락이 닿는 챙의 헝겊 부분도 너덜너덜했다. 남자는 곧 회색빛 당나귀에 걸터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가오는 나이 지긋한 목사와 마주쳤다.”(토마스 하디 저, 김문숙 역, 열린책들, 2011) 1.근현대 소설답게 시제와 등장..
“앨리스는 하릴없이 언니와 강둑에 앉아 있는 것이 점차 무료해졌다. 언니가 읽고 있는 책을 한두 번 흘끔거리기도 했지만 그림이나 대화문도 보이지 않아 ‘그림도 이야기도 안 나오는 뭐 저런 책이 다 있담? 하고 속으로 투덜댔다. 굳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데이지를 꺾어오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꽃목걸이를 만드는 게 재미있을까 생각하는데(후덥지근해 너무 졸리고 멍했지만 최선을 다해서) 갑자기 눈이 빨간 흰 토끼 한 마리가 옆으로 쌩하고 지나갔다. 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토끼가 혼잣말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루이스 캐롤 저, 공민희 역, 코너스톤(도서), 2020) 1.전형적인 동화 판타지 형식 도입부를 보여주고 있다.독자와 눈높이를 맞춘 아이를 주인공로 내세워 어린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