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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서,序) 신이 삼가 살피건대 천지의 도(道)는 드넓고 두터우며 높고 밝기에 만물을 실어 주고 덮어 줌이 유구하여 끝이 없으며, 조종(祖宗)의 덕은 오래 쌓여 깊고 장구하기에 왕업의 터전 또한 원대하여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한갓 바다와 산악이 널리 펼쳐 있는 것과 새와 물고기, 동물과 식물이 커나가는 것과 바람·비·우레·번개의 변화하는 것과 해와 달, 추위와 더위의 운행만을 볼 뿐 땅의 박후(博厚)함과 하늘의 고명(高明)함으로 끊임없는 공화(功化)가 이루어졌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낱 종묘·궁실의 아름다움과 고을 백성들의 만물의 풍부하고 성대함과 예절·음악·형벌·정사의 문명과 인정(仁政)·은택·교화가 넘치는 것만 볼 뿐, 조종의 덕이 오래 쌓여 왔고 깊고 장구하여 ..
“보가트.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해트는 자기 집 뒤쪽 베란다 난간에 기대앉아 건너편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쪽에 무슨 일 없나 보가트?’/보가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도 듣지 못할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쪽은 무슨 일 없나 해트?’/그가 왜 보가트라 불리는 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그런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 해트가 아닌가 싶다. ‘카사블랑카’라는 영화가 제작된 연도를 사람들이 기억하는 지 모르겠다. 그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던 보가트의 명성이 포트 오브 스페인에 불길처럼 번진 결과 수많은 젊은이들이 보가트 풍의 비정한 태도를 흉내 내게 된 것도 바로 그해였다./사람들이 그를 보가트라고 부르기 전에 그는 ‘페이션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가 아침부터 밤까..
“1750년 이른 봄이었다./ 서아프리카 감비아 해안에서 나흘 정도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타나는 주푸레 마을에 오모로와 빈타 킨테 사이에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빈타의 건강한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엄마를 닮아 검고 산모의 피로 미끄럽고 얼룩진 채 요란하게 울었다. 주름진 두 산파인 늙은 뇨 보토와 아기의 할머니 야이사는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기뻐서 웃었다./조상들의 말을 따르면, 첫 사내아이는 부모들뿐 아니라 부모의 집안에도 알라신의 특별한 축복을 가져온다고 했다. 그래서 킨테라는 이름이 유명해지고 영원히 남으리라는 자랑스러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는 첫닭이 울기 전이었다. 아기는 뇨 보토와 야이사 할머니의 떠드는 소리와 더불어, 마을의 다른 여자들이 세 개의 돌멩이 사이에 지핀 불 위에 얹은 질그..
“변호사 어터슨 씨는 쉽게 미소짓지 않는 엄한 남자였다. 어쩌다 대화를 하려 해도 말투가 어눌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감정을 내세우는 경우도 드물었다. 무뚝뚝하고 따분한 말라깽이 키다리가 그였다. 그렇다고 매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사교 모임의 와인이 입에 맞을 때면 지극히 인간적인 눈빛을 띠기도 했다. 대화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식사 후에 은근히 표정으로 드러났고, 일상의 행동에서는 보다 빈번하고 눈에 띄게 나타났다. 생활도 거의 금욕 수준이었다. 혼자 있을 때는 진으로 고급 와인의 사치를 대신했으며, 연극을 좋아하면서도 지난 20년간 극장 문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 하지만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너그럽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분을 못 이겨 길길이 날뛰기라도 ..
“지난밤 다시 맨덜리로 가는 꿈을 꾸었다. 저택으로 이어지는 길 입구의 철문 앞에 섰지만 굳게 닫힌 탓에 들어갈 수 없었다. 철문에는 쇠사슬이 가로 걸리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문지기를 소리쳐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녹슨 철문 틈새로 들여다보니 문지기 집을 오랫동안 버려졌던 듯한 모습이었다. 굴뚝에서 연기도 나오지 않았고, 작은 격자창은 깨어져 쓸쓸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순간, 꿈속에서 흔히 그렇듯 신비로운 힘을 발휘해 철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길은 본래 그랬듯 구불거리며 내 앞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면서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는 그 길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낮게 뻗어내린 나뭇가지를 피해 고개를 숙였을 때 비로소 깨달..
요조숙녀는 관음찬을 짓고 매파는 좋은 인연을 이어주다. “유연수(劉延壽)는 자(字)가 산경(山卿)으로 북경 사람이다. 그는 성의백(誠意伯) 유기(劉基,1311~1375, 명나라 개국공신)의 후예로 성의백이 벼슬하여 북경에 거주한 뒤부터 그 자손들은 북경에 일가를 이루고 살았다. 연수의 아버지 유희(劉熙)는 세종(世宗,명나라 11대 황제) 때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냈는데, 문장과 덕망이 높아 세상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 무렵 태학사 엄숭(嚴崇, 명나라 중엽 간신)이 정권을 농단했다. 유희는 엄숭과 뜻이 맞지 않아 병을 핑계로 간절하게 사직을 바라는 상소를 올렸다. 천자가 상서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을 허락하고 특별히 태자소사(太子少師, 태자를 보호하고인도하는 벼슬)를 제수하여 어진 사람 공경하는 뜻을..
“연쇄살인을 다루는 FBI 내 행동과학부는 콴티크 기지 연수원 건물의 반 지하식 일 층에 있었다. 사격 훈련장에 있다가 호건로(路)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 온 클라리스 스탈링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상태였다. 범인을 체포할 때의 사격 요령을 배우느라 바닥에 엎드리고 뒹구는 바람에 머리카락에 풀잎이 붙었고 FBI 연수원 마크가 찍힌 방풍 재킷에도 잔디 얼룩이 묻었다. 외부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탈링은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깐 살폈다. 이제 와서 몸단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튀어오라는 잭 크로포드 부장의 호출을 받은 터라 손에서 화약 냄새가 나지만 씻을 시간이 없었다. 어수선한 사무실로 들어가자 남의 책상 앞에 홀로 서서 통화하는 잭 크로포드 부장이 보였다. 거의..
폼페이의 두 신사. “오, 디오메드, 잘 만났습니다. 오늘 밤 글라우코스와 함께 저녁을 드십니까?” 체격이 자그마한 청년이 말했다. 여성스럽게 풍성한 주름을 잡은 튜닉을 걸친 품이 보기에도 돈 잘 쓰는 멋쟁이였다. “저런 아니라네. 클로디우스. 나는 초대받지 못했어.” 풍채 좋은 중년 디오메드가 대답했다. “폴룩스 신께 맹세코, 아쉬운 일이구먼! 글라우코스가 대접하는 저녁은 폼페이에서 최고라고들 하니 말이네” “꽤 훌륭하지요. 하지만 제게는 늘 술이 부족합니다. 그 친구는 옛 그리스인의 피를 물려받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튿날까지 술이 덜 깬다고 하니.” “술을 아끼는 데는 그것 말고도 이유가 있을 수 있네.” 디오메드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잘난 체하며 돈을 물 쓰듯 해도 그 사람이 겉보기만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