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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명작과 저자 (212)
명작의 첫문단 분석과 작가 이야기
“광명 2년 7월 8일에 제도 도통 검교태위 아무개는 황소에게 알린다./무릇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리라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하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지혜 있는 이는 시기에 순응하는 데서 성공하고/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슬리는 데서 패하는 법이다./비록 백년의 수명에 죽고 사는 것은 기약하기 어려우나/모든 일은 마음으로서 그 옳고 그른 것을 이루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지금 우리 왕사로 말하면 덕을 앞세우고 죽이는 것을 뒤로한다./앞으로 상경을 수복하고 큰 선의를 펴고자 하여/삼가 임금의 분부를 받들고 간사한 것들을 치우려 한다./너는 본시 먼 시골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우연히 시세를 타고 감히 강산을 어지럽게 하였다./드디어 불측한 마음을 품고 높은 자리를 노려보며..
“일이 끝난 후 급료로 받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은행에 갔다. 돈을 내주는 창구 앞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반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창구 안으로 수표를 들이밀자 출납 직원은 노란 블라우스를 입은 아가씨에게 수표를 건네주었다. 아가씨는 계좌카드가 쌓여 있는 곳으로 가서 내 카드를 찾아내 확인을 한 다음 출납 직원에게 다시 수표를 둘려주며 ‘맞아요’라고 말했다. 출납 직원은 깨끗한 손으로 지폐를 세어 대리석 판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받은 돈을 다시 한번 세어 본 후 사람들을 밀치고 바깥 문 옆에 있는 조그만 탁자로 갔다. 돈을 봉투에 넣고 아내에게 쪽지를 쓰기 위해서였다. 탁자 위에는 불그스름한 입금 전표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고, 나는 그중 하나를 집어 뒷면에다 연필로 이렇게 썼다. ‘..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말하자면 지금과 너무나 흡사하게 당시의 목청 큰 권위자들 역시 오직 극단적인 비교로만 당시의 사건들이 선인지 악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왕좌에는 턱이 큰 왕과 못생긴 왕비가 앉아 있었고, 프랑스의 왕좌에는 턱이 큰 왕과 아름다운 왕비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두나라 모두, 빵과 생선을 재어놓고 사는 귀족들에게는 당시의 전반적인 상황이 영원할 것임이 수정을 들여다보듯 명백한 사실이었다.”(..
“첫번째 이야기-거울과 거울조각. 자, 그러면 시작해 봅시다. 이야기가 끝날 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될겁니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옛날 옛적에 사악한 요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요정 중에서 가장 짓궂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거울 속에 비춰지는 착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나쁘고 고약하게 보이게 하는 힘을 가진 마법의 거울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거울은 쓸모없는 것과 흉측한 것을 확대시키고 한층 더 추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마력의 거울 속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경치가 삶아 놓은 시금치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리 멋있고 착한 사람들도 무서운 괴물처럼 보이거나, 몸통 없이 머리를 대고 거꾸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바꾸어놓은 그 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작됐다. 8시 십오분 전, 그는 분데스테라세에서 시내를 가로질러 김나지움과 연결되는 키르헨펠트 다리로 들어섰다. 학기 중에는, 그리고 주중에는 언제나 똑같았다. 늘 8시 십오분 전이었다. 언젠가 한번 다리가 막혀 돌아가야 했던 날, 그는 그리스어 수업 시간에 실수를 했다. 그가 실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학교 전체가 며칠 동안 그의 실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학생들이 잘못 들었을 거라는 의견이 득세했고, 나중에는 그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문두스*-그레고리우스를 모두 그렇게 불렀다-가 그리스어나 라틴어 또는 히브리어에서 실수를 한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첫번째 편지-세실 몰랑주가 ***의 성(聖) 우르슬라 수녀원에 있는 소녀 카르네에게. 자 이젠 내가 약속을 잘 지킨다는 걸 알겠지? 모자와 꽃장식을 매만지느라고 시간을 다 보내지는 않는다는 걸 말이야. 언제든지 너를 위해 내줄 시간은 있을 거야.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에 그동안 4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본 것보다 더 많은 장신구를 본 것 사실이야. 난 수녀원에 처음 찾아갈 때 탕빌을 면회 신청할 거야. 사치스럽고 오만한 애니까 속이 쓰리겠지? 옛날에 자기가 멋지게 차려입고 나타날 때마다 우리가 속상해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비교가 안 되게 갚아 줄 거야. 엄마는 어떤 일이든 모두 나하고 상의하셔. 이제는 예전처럼 학생으로 취급하시지 않는 거지. 내 시중을 드는 하녀도 따로 있어. 나..
“서론-전쟁과 혁명. 마치 사건들이 레닌의 초기 예측을 실현시키려고 서두르기나 한 듯, 전쟁과 지금까지 혁명은 20세기의 흐름을 결정해 왔다. 그리고 전쟁과 혁명은 여전히 우리 세계의 핵심적인 정치적 쟁점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19세기의 이데올로기들과 구분된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주의 주장으로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세계의 주요 실재들과의 접점을 상실한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같은 것들은 19세기의 이데올로기다. 혁명과 전쟁은 자신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 어떠한 교의보다도 오래 살아남았다. 각 민족들은 혁명을 계기로 세계 여러 나라 사이에서 자연법과 자연신의 법이 자신들에게 부여한 독립과 평등의 지위를 유지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한나 아렌트 저, ..
“스물다섯에 죽은 그녀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있을까?/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했다. 그녀는 모차르트와 바흐를 사랑했고, 그리고 비틀스를, 그리고 나를. 언젠가 한번은 그녀가 이런 음악가들과 나를 함께 묶어서 말하기에. 그 순서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방긋 웃으며, ‘알파벳 순서야’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나도 역시 웃어 넘기도 말았다. 하지만 이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녀가 나를 이름으로 명단에 올렸다면-그럴 경우 나는 모차르트 다음이 될 것이고-성(姓)으로 올렸다면 바흐와 비틀스 사이에 끼게 된다. 어느 경우든 간에 내가 첫 번째가 되지 못하는데, 그런 시시한 이유 때문에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나는 항상 내가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왔다. 우리 집안의 내력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