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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첫문단과 작가 이야기

동문선 서(東文選序) “하늘과 땅이 처음 나뉘자 문(文)이 이에 생겼습니다. 위로는 밝은 일월(日月)과 벌여 있는 별이 하늘의 문(文)이 되었으며, 아래로는 솟아 있는 산과 흐르는 물이 땅의 문이 되었습니다. 성인이 괘(卦)를 긋고 글자를 만들매 인문(人文)이 점차 베풀어졌으니 정(精)ㆍ일(一)ㆍ중(中)ㆍ극(極)은 문(文)의 체(體)요, 시(詩)ㆍ서(書)ㆍ예(禮)ㆍ악(樂)은 문(文)의 용(用)입니다. 따라서 시대마다 각각 문이 있고, 문은 각각 체재가 있으니, 전(典)ㆍ모(謨)를 읽으면 당(唐)ㆍ우(虞)의 문을 알 수 있고, 훈(訓)ㆍ고(誥)ㆍ서(誓)ㆍ명(命)을 읽으면 삼대(三代)의 문을 알 수 있습니다. 진(秦)에서 한(漢)으로, 한에서 위(魏)ㆍ진(晉)으로, 위ㆍ진에서 수(隋)ㆍ당(唐)으로, 수ㆍ당에..

제1장 “다비드의 제자이며, 이전에 앙리 4세 구(區)였던 퐁네프 구의 위원인 화가 에바리스트 가믈랭은, 3년 전인 1790년 5월 21일부터 구 총회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옛 바르나바 교회에 아침 일찍이 갔다. 그 교회는 재판소의 철책 근처, 좁고 어두침침한 광장 위에 서 있었다. 고전적인 두 기둥 양식에다 불꽃이 솟아나오는 화로들이며 거꾸로 놓인 까치발 달린 탁자들로 장식된 정면은 세월의 풍상에 시달려 음산해지고 인간의 손을 타 훼손된 모습이었다. 정면에 새겨진 종교적인 문장들은 망치질이 되어 있었고, 출입구 위에는 검은 글씨로 ‘자유,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공화파의 표어가 쓰여 있었다. 에바리스트 가믈랭은 중앙 홀 안으로 들어갔다. 둥근 천장은 성 바울 수도회 성직자들이 중백의(中白..

“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기에 매우 늦었다. 게다가 아멜 선생님께서 동사에 대해 질문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아 야단맞지나 않을까 몹시 두려웠다. 문득 수업을 빼먹고 들판을 놀러나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티없이 맑고 날씨는 따뜻했다. 산기슭에는 티티새가 지저귀고 제재소 뒤의 리페르 들판에서는 훈련을 받고 있는 프로이센 병사들의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쪽이든 문법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그런 유혹을 꾹 참아 내고 숨차게 학교로 달리기 시작했다. 면사무소 앞을 지나면서 철망을 씌운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여있는 모습을 보았다. 요즘 2년 동안 패전이든가 징용, 또는 사령부 명령 따위의 온갖 나쁜 소식만 전해 준 게시판이었다. 나는 발을 ..

소시우스 세네키오(Sosius Senecio)에게. “지리학자들은 자기들의 지식 범위를 벗어나는 지역들을 지도 변두리로 밀쳐두고 설명하기를, ‘이곳 너머에는 물도 없고 맹수들이 들끓는 모래사막이 있다’느니, ‘보이지 않는 늪이 있다’느니, 아니면 ‘흑해(黑海) 북쪽에는 스키티아(Scythia)족이 사는 동토와 얼어붙은 바다가 있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 비교 평전을 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럴듯한 논리를 댈 수 있고 사실만을 다루는 오늘날의 시대가 아닌, 저 고대의 역사를 오늘날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저 너머는 불가사의하고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로 가득하니 그곳은 시인들이나 우화 작가들만이 살아가는 곳이다. 거기서는 의심스럽고 불투명한 이들만 벌어진다’고 말이다.”(플루타르코..

“잔느는 짐을 다 꾸리고 창가로 다가가 보았으나 비는 그치지 않고 있었다. 밤새 폭우가 유리창과 지붕을 두드렸다. 물을 잔뜩 머금고 낮게 내려앉은 하늘은 구멍이라도 난 듯 땅 위로 물을 게워내고 흙을 설탕처럼 녹여 걸쭉하게 만들었다. 무거운 열기를 가득 품은 돌풍이 불고 있었다. 불어난 시냇물의 요란한 소리가 인적없는 거리를 채웠고, 스펀지처럼 습기를 빨아들인 집집마다 지하실부터 다락까지 온 벽이 땀을 흘렸다. 어제 수녀원에서 나와 마침내 영영 자유로워져 오래전부터 꿈꿔온 인생의 온갖 행복을 거머쥘 준비가 된 잔느는 날이 개지 않으면 아버지가 떠나기를 망설일까 걱정되어 아침부터 백번쯤 지평선을 살폈다. 그러다 깜빡 잊고 여행 가방에 달력을 챙겨 넣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벽에서 작은 달력을 떼어..

제1부 “매일 노동자 마을 위로 탁하고 기름진 공기 속에 공장의 사이렌 소리가 떨면서 울려 퍼지자 그 부름에 응답하듯 조그만 회색 집들에서 아직 잠으로 근육을 풀지 못한 음울한 사람들이 겁먹은 바퀴벌레처럼 거리로 나왔다. 차가운 어스름 속에서 그들은 비포장도로를 걸어 높이 솟은 돌 감옥과 같은 공장을 향해 갔고, 공장은 수십 개의 기름 낀 네모난 눈으로 더러운 거리를 밝히며 무심한 확신을 가지고 그들을 기다렸다. 진흙이 발밑에서 쩔꺽거렸다. 잠에 취한 이들이 목쉰 소리로 고함을 질렀고, 거친 욕설이 화난 듯 공기를 갈랐으나 사람들 앞에는 또 다른 소리들이 떠다녔다-시끄럽고 육중한 기계 소리, 으르렁거리는 수증기 소리, 높고 검은 굴뚝들이 마치 굵은 몽둥이처럼 마을 위로 솟아올라 음울하고도 엄하게 내려다보..

제1장 마녀 메로에와 소크라테스 이야기 “나는 사업상 테살리아로 가고 있었다. 그곳은 어머니의 가문이 뿌리를 두고 있는 곳이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유명한 플루타르코스와 그의 조카인 철학자 섹스투스의 피를 이어받았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테살리아 태생의 순종 백마를 타고 높은 산과 위험한 계곡과 습기 찬 평원과 경작지를 지났다. 그러자 말은 완연히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나 역시 계속해서 해서 말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피로에 지쳐 있었다. 나는 저린 몸을 풀고 싶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 한 줌의 잎사귀로 조심스럽게 말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서 귀를 쓰다듬은 후, 고삐를 풀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말의 긴장을 풀어주고, 피로로 축 처진 말의 호흡이 정상을 되찾게 하고 있었다. 말이 고개를 ..

총 서시(The General Prologue) “4월의 달콤한 소나기가 3월의 가뭄을/ 뿌리까지 깊이 꿰뚫을 때,/그리고 꽃이 피게 하는 촉진적인 힘을 지닌/ 그 축축함에 모든 줄기가 적셔질 때/ 그리고 서풍 역시 달콤한 입김으로/ 모든 숲과 들판에서 부드러운 새순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있을 때, 그리고 갓 나온 태양이/ 백궁좌의 반절만큼 달렸을 때,/ 그리고 밤새도록 뜬 눈으로 잠자던/ 작은 새들이 노래 부를 때/(자연은 그렇게 그들의 마음을 깨워 자극하네.) 그때 사람들은 성지 순례 떠나기를 원하며,/ 순례자들은 낯선 해안을 향하여,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유명한 멀리있는 성자를 찾았다./ 그리고 보다 특별히 영국의 모든 지역으로부터/ 캔터베리로 그들은 모여들었다./ 그들이 고통받을 때 도움을 준/..